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원지(元之), 호는 서산(西山). 유만수(柳曼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원지(柳原之)이다. 아버지는 현감 유함(柳浛)이며, 어머니는 최렴(崔濂)의 딸이다.
1451년(문종 1) 증광문과에 정과로 급제하고 감찰(監察)을 지냈다.
1455년(단종 3)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양(禪讓)하자 공문(空門)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해주(海州) 수양산(首陽山)의 신광사(神光寺)에 있다가 만년에는 양주(楊州) 서산(西山)으로 옮겼으며, 상왕에 대한 절의를 지켜 일생을 은거하였다.
1456년(세조 2) 단종복위운동이 일어나자,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성삼문(成三問)의 손녀를 데려다 숨겨 길러 며느리로 삼았다. 1462년(세조 8)에 사망하였으며, 양산(梁山)의 구산사(龜山祠)에 제향되었다.
글씨와 그림에 능하였다. 유작으로 「지곡송학도(芝谷松鶴圖)」(간송미술관 소장) 한 점이 전하고 있다. 「지곡송학도」는 1434년(세종 16)에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원체화풍(院體畫風)에 토대를 둔 조선 초기 화조화의 특성을 보이면서, 변각적인 구도와 차륜엽법(車輪葉法)의 소나무 묘사 등에서 남송대(南宋代) 마하파(馬夏派)의 화풍을 반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