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유광보(柳光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의(柳依)이다. 아버지는 참판 유양식(柳陽植)이며, 어머니는 기면(奇勉)의 딸이다.
1460년(세조 6) 평양별시문과(平壤別試文科)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여러 청요직(淸要職)을 거쳐 1464년 경기도경차관(京畿道敬差官)이 되었다. 이듬해 중시 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고, 1466년 지평을 지냈다. 1475년(성종 6) 홍문관부교리가 되고, 1478년 예문관응교·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을 지낸 뒤 1482년 행사간(行司諫)을 지냈다.
1486년 양양부사로 재임하면서 의창(義倉)의 환자[還上]에 따른 폐단을 제기하는 등 백성들의 구휼에 힘썼다.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배소에서 죽었다.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金時習)과 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