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시(應時). 무과를 거쳐 관직에 나아갔으며, 1599년(선조 32) 5월 고성군수로 재직 중 사헌부로부터 지방관으로서의 자질이 없으니 파직하라는 탄핵을 받아 파직되기도 하였다.
그 뒤 1604년 6월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의주까지 시종, 수가(隨駕)한 공으로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녹훈되고 완원군(完原君)으로 봉하여졌다. 같은 해 10월 평안도우후(平安道虞候)에 임명되었으나 맡은 바 직책을 수행하기는커녕 다른 사람의 노비를 탈취하는 등의 불법을 행하였다는 사헌부의 탄핵으로 또다시 파직되었다.
1606년 3월 영암군수로 다시 외보(外補)되었으나, 이듬해 사간원으로부터 전정(田政)의 폐단과 관련하여 탄핵되기도 하였다. 1610년(광해군 2) 6월 임진왜란 당시의 공로를 다시 인정받게 되었고, 이후 관직은 오위도총부의 부총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