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선천군수, 충남지사, 중추원 참의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917년 12월부터 1921년까지 선천군수를 지냈고, 1921년 4월에는 ‘군수시찰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왔다. 1921년부터 1927년까지 도지사의 자문직이며 부지사격에 해당하는 평북 참여관과 강원도 참여관(1918∼1929)을 지냈다. 1929년 11월 충남지사로 승진하여 1931년까지 재직하였다. 1930년 2월에는 일본의 사회교화단체인 수양단 조선연합회본부의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관직 재직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 정부로부터 1922년 5월에 훈6등 서보장, 1926년 7월에 훈5등 서보장, 1930년 1월에 훈4등 서보장을 받았고, 1931년 10월 귀족의 예우에 준하는 종4위에 서위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여러 외곽단체에 참여하여 일제의 식민정책에 적극 협력하였다.
1932년 5월부터 1945년 2월 사망할 때까지 약 13년 동안 조선총독의 자문기구인 조선총독부 중추원의 참의를 지냈고, 같은 해 7월 중추원시정연구회의 산업부 위원을 지냈다. 1937년 9월 중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시국선전을 위해 조직한 시국강연대의 연사로 충청남도 일대를 순회하며 선전활동을 벌였다. 1941년에는 중추원 부여신궁공사 근로봉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40년 친일 유림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 평의원으로 활동하였고, 1941년 8월 황국(皇國)정신의 고양을 내세운 흥아보국단 준비위원, 같은 해 10월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 발기인 등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전쟁협력 외곽단체인 국민총력 조선연맹의 평의원으로 참여하여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였다.
참고문헌
- 『매일신보(每日申報)』
- 『조선총독부시정25주년기념표창자명감(朝鮮總督府始政二十五周年 記念表彰者名鑑)』
-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
-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10(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 『일제하 조선인관료 연구』(박은경, 학민사, 1999)
- 『민족정기의 심판』(혁신출판사, 1949)
- 『朝鮮人事興信錄』(朝鮮新聞社 編,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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