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한 ()

법제·행정
인물
일제강점기 봉상사 제조, 종묘서 제조, 의효전 제조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74년(고종 11)
사망 연도
1946년 12월 17일
본관
안동(安東)
출생지
서울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봉상사 제조, 종묘서 제조, 의효전 제조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94년 식년시 문과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다. 1898년 11월 왕명의 출납과 기록을 담당하는 비서원랑에 임명되었다. 1899년 홍문관 시독을 지냈고, 1900년 비서원승에 임명되었다. 비서원승 재임시 1900년 7월 강화부 정족산성사고에 봉안된 『실록』 중 일부가 소실된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유형 1년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 소실된 실록이 발견되면서 형을 면제받고 복직하였다.

1901년 5월부터 1903년까지 비서원승 겸 태의원소경을 지냈다. 1903년 8월 궁내부 특진관에 임명되었고 칙임관 3등에 올랐다. 그 뒤 1903년 9월부터 1904년 1월까지 봉상사제조를 지냈고, 1906년 울산군수와 종묘서제조·의효전제조 등을 역임하였다. 1908년 10월 『국조보감』 편찬위원에 임명되어 이용원, 김윤식, 신기선, 아버지 김학진 등과 함께 작업하였다. 그해 12월에 『국조보감』 편찬시 정서를 담당하는 선사위원을 맡았고, 이듬해 2월에는 감수를 담당하는 감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4월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하였고, 그해 10월 『국조보감』을 완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훈4등 태극장을 받았다.

일제의 강제 병합조약 체결로 국권이 넘어간 뒤 1912년에 일본 정부로부터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고, 1914년에 종5위에 서위되었다. 1918년 1월 「조선귀족령」에 의거하여 아버지 김학진의 남작 작위를 계승하였다. 1928년 조선총독부 중추원 조사과 촉탁으로 근무하면서 일본 정부에 의해 서위가 정5위에 이르렀으며, 1940년 11월에는 정4위가 되었다. 1928년에는 일본 국왕 쇼와 즉위 대례를 기념하기 위해 제정한 쇼와대례기념장을 받았다.

중일전쟁 이후 여러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력하였다. 1938년 9월 귀족 및 친일 유력자들이 조직한 ‘조선총후보국회’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39년에는 유림들의 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의 평의원으로 활동하였다. 유도연합회는 조선신궁에서 전승기원제를 거행하고 천황에 대하여 총후 임무를 완수할 것을 맹세하였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1940년 일본 정부로부터 기원2600년 축전기념장(정4위)을 받았다.

김덕한의 일제 강점기 활동은 2004년 10월 29일 공포된 대통령령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7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IV-2:친일반민족행위자결정이유서(pp.137∼143)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4년 공포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2004.3.22)과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2004.10.29)에 의거하여 2005년 5월 31일 설립되었다. 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자 선정, 친일반민족행위의 조사, 친일반민족행위 관련 국내외 자료수집 및 분석, 조사대상자의 친일반민족행위결정, 진상규명보고서 작성 및 발간 등이었다. 2009년 11월 진상규명 보고서 총 25권을 발간하여 1,006명의 친일반민족행위자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뒤 일을 마쳤다.

참고문헌

『고종실록』
『국조방목』
『비변사등록』
『순종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2(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고종시대사』 3∼6(국사편찬위원회, 1970∼1972)
집필자
이병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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