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걸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재감직장, 세자익위사익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금사(錦沙)
  • 신백(藎伯)
인물/전통 인물
  • 본관진주(晉州)
  • 사망 연도1665년(현종 6)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
  • 출생 연도1588년(선조 2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조계찬 (전 동아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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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재감직장, 세자익위사익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신백(藎伯), 호는 금사(錦沙). 관찰사 유진동(柳辰仝)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통제사 유형(柳珩)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3년(광해군 5) 정조(鄭造)·윤인(尹訒) 등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을 주장하자 그들의 죄를 강경히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처벌을 당하였다.

1618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 해 인목대비를 폐하여 서인으로 강등시켜 서궁(西宮)에 유폐하자 이에 분개하여 대과를 단념하고 공주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후 비로소 벼슬에 나갔고,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에는 사재감직장(司宰監直長)으로 있으면서 의병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으로 향하였으나 화의 성립으로 의병을 해산하였다.

그 뒤 세자익위사익위(世子翊衛司翊衛)를 거쳐, 현감을 지냈다. 청나라와 화의가 성립된 뒤에 설욕책을 상소하였는데, 세자사부로 있던 이유태(李惟泰)는 유충걸의 상소문을 읽고 충의심에 감탄하였다.

참고문헌

  • - 『진양충의세편(晉陽忠義世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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