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

  • 종교·철학
  • 인물
  • 남북국
802년, 해인사를 창건한 통일신라 승려.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4년
  • 옥나영 (숙명여자대학교 강사, 한국고대사(불교사상사)
  • 최종수정 2025년 10월 22일
합천 가야산 해인사 일원 전경 미디어 정보

합천 가야산 해인사 일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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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순응은 802년 해인사를 창건한 통일신라 승려이다. 의상을 계승한 신림을 사사하고, 766년에 당나라로 유학 갔다. 귀국 후 정부로부터 우대받았으며, 이정과 함께 해인사를 창건하였다. 804년에는 강원도 양양의 선림원지 종을 조영할 때 상화상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정의

802년, 해인사를 창건한 통일신라 승려.

주요 활동

순응의 생몰년 및 구체적인 생애는 알 수 없다. 그는 의상(義相)의 화엄 교학을 계승한 신림(神琳)을 사사하고, 766년에 당나라로 유학 갔다가 귀국하였다. 귀국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상당 기간 유학했다고 추측된다. 귀국 후 중앙 정부로부터 우대받았다.

최치원(崔致遠)이 작성한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迦耶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에 의하면, 정원(貞元) 18년인 802년(애장왕 3) 10월 16일에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이정(利貞)이 뒤를 이어 완성하였다고 한다.

한편, 「가야산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에는 왕후의 병을 고쳐준 것을 계기로 순응 · 이정 두 승려가 해인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해인사는 원성왕의 할머니인 성목태후(聖穆太后)의 후원을 받아 창건되었다. 804년(애장왕 5)에는 양양 선림원지 종을 조영할 때 상화상(上和上) 자격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원전

  • - 『삼국사기(三國史記)』

  • - 「양양 선림원지 종명(襄陽 禪林院址 鍾銘)」

  • -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迦耶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

  • - 「가야산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

  • 논문

  • - 김상현, 「구세기 후반의 해인사와 신라 왕실의 후원」(『신라문화』 28, 동국대학교 신라문화연구소,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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