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응의 생몰년 및 구체적인 생애는 알 수 없다. 그는 의상(義相)의 화엄 교학을 계승한 신림(神琳)을 사사하고, 766년에 당나라로 유학 갔다가 귀국하였다. 귀국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상당 기간 유학했다고 추측된다. 귀국 후 중앙 정부로부터 우대받았다.
최치원(崔致遠)이 작성한 「신라가야산해인사선안주원벽기(新羅迦耶山海印寺善安住院壁記)」에 의하면, 정원(貞元) 18년인 802년(애장왕 3) 10월 16일에 건물을 세우기 시작하였고, 이정(利貞)이 뒤를 이어 완성하였다고 한다.
한편, 「가야산해인사고적(伽倻山海印寺古籍)」에는 왕후의 병을 고쳐준 것을 계기로 순응 · 이정 두 승려가 해인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해인사는 원성왕의 할머니인 성목태후(聖穆太后)의 후원을 받아 창건되었다. 804년(애장왕 5)에는 양양 선림원지 종을 조영할 때 상화상(上和上) 자격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