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진(汝進). 할아버지는 현감 유담연(柳燂然)이며, 아버지는 통제사 유성채(柳星彩)이다.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에 임명되고, 도총부도사·훈련원주부·봉산군수 등을 거쳐, 1718년(숙종 44)에 숙천부사·삭주부사·전라도수군절도사·경상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721년(경종 1)에 분부총관(分副摠管)을 지내고, 이듬해에 훈련중군(訓鍊中軍)이 되었다.
그러나 신임옥사로 소론의 공격을 받아 장흥부로 유배되어, 곧 노론의 거두 김창집(金昌集)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1808년에 유생 김정진(金鼎進)의 상소에 의하여 신임충량(辛壬忠良)으로 불리었으며, 사충사(四忠祠) 옆에 별도의 사당을 세워 조성복(趙聖復) 등과 함께 배향되었다.
숙천부사로 있을 때 선정으로 특진을 하는 등 관(官)으로서의 업적과 제가(齊家)의 법도에 있어서는 본받을 점이 매우 많았다고 하나, 옥사 관계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청백(淸白)과 효우(孝友)에 대한 행실만은 사람들에 의하여 전송(傳誦)된다. 1783년(정조 7)에 신원되어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무민(武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