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취장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봉산군수, 숙천부사,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여진(汝進)
시호
무민(武愍)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71년(현종 12)
사망 연도
1722년(경종 2)
본관
진주(晉州)
주요 관직
훈련원주부|봉산군수|숙천부사|전라도수군절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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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봉산군수, 숙천부사, 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여진(汝進). 할아버지는 현감 유담연(柳燂然)이며, 아버지는 통제사 유성채(柳星彩)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에 임명되고, 도총부도사·훈련원주부·봉산군수 등을 거쳐, 1718년(숙종 44)에 숙천부사·삭주부사·전라도수군절도사·경상도병마절도사를 역임하였다. 1721년(경종 1)에 분부총관(分副摠管)을 지내고, 이듬해에 훈련중군(訓鍊中軍)이 되었다.

그러나 신임옥사로 소론의 공격을 받아 장흥부로 유배되어, 곧 노론의 거두 김창집(金昌集) 등과 함께 처형되었다. 1808년에 유생 김정진(金鼎進)의 상소에 의하여 신임충량(辛壬忠良)으로 불리었으며, 사충사(四忠祠) 옆에 별도의 사당을 세워 조성복(趙聖復) 등과 함께 배향되었다.

숙천부사로 있을 때 선정으로 특진을 하는 등 관(官)으로서의 업적과 제가(齊家)의 법도에 있어서는 본받을 점이 매우 많았다고 하나, 옥사 관계로 기록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청백(淸白)과 효우(孝友)에 대한 행실만은 사람들에 의하여 전송(傳誦)된다. 1783년(정조 7)에 신원되어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무민(武愍)이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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