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사현(士賢), 호는 퇴수당(退修堂). 아버지는 참봉 유경진(劉景鎭)이며, 어머니는 성주배씨(星州裵氏)로 진사 배삼찬(裵三贊)의 딸이자 배극렴(裵克廉)의 후손이다. 증승정원좌승지(贈承政院左承旨) 유광진(劉匡鎭)에게 입양되었다.
1831년(순조 31) 진사시(進士試)에 급제하고, 1835년(헌종 1) 효행(孝行)으로 선공감감역(繕工監監役)에 제수되었다. 박윤원(朴胤源)·오희상(吳熙常)·이탁중(李度中) 등과 교유가 깊었으며, 1855년(철종 6) 수직(壽職)으로 첨중추부사(僉中樞府事)에 제수되었다.
1865년(고종 2) 정원용(鄭元容)의 건의에 의해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제수되고 쌀과 고기를 하사받았다. 효행이 두터운 집안에서 태어나 91세의 장수를 누리며 5세(五世)가 한 집에 살았다. 얼굴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자손들이 번성하였으며, 효행으로 부역이 면제되고 국가로부터 정려(旌閭)가 내려진 자가 7명이나 되었다.
성리학(性理學)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였으면서도 퍽 자유로운 사상을 표출하여 진보적인 시각을 갖추었다. 저서로는 『퇴수당유고(退修堂遺稿)』 1책 38장(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