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성

  • 과학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후기 내의원전의, 고양군수, 보국숭록대부 등을 역임한 의관.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내의원전의|고양군수|숭록대부|보국숭록대부
  • 출생 연도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쾌정 (한독의약박물관)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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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내의원전의, 고양군수, 보국숭록대부 등을 역임한 의관.

생애 및 활동사항

유후성은 침(鍼)으로 유명하였다. 1646년(인조 24)부터 3년간 왕실의 전의(典醫)를 역임하였으며, 1657년(효종 8) 경기도 고양군수에 임명되었으면서도 수시로 대궐에 드나들며 침을 놓았다. 이듬해 왕이 쾌유되자 그 공로로 숭록대부(崇祿大夫)에 가자(加資)되었다.

그 다음해인 1659년 효종이 즉위 10년 만에 죽자, 당시 임금의 병을 돌보던 6명의 어의(御醫)에게 그 책임을 물어 신가귀(申可貴)는 교살되었다. 유후성과 조징규(趙徵奎)는 겨우 사사(賜死)를 면하고 유배에 처해졌고, 박군(朴頵)·이후담(李後聃)·최곤(崔梱) 등에게는 곤장 100대의 처벌이 내려졌다. 현종 즉위 후에 다시 복직되어 어의로서 내의원에 봉직하였다.

1662년(현종 3) 대왕대비의 병이 완쾌되자 이를 특별히 경하하여 그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가 특별히 가자(加資)되었다. 조선시대 의관으로 생존자로서는 전례가 없는 높은 품계에 제수되어 많은 물의를 빚기도 하였다.

1667년 왕이 대비를 모시고 온양온천에 행차할 때 수행의원으로 동행하였다. 왕실의 신임이 두터워 인조·효종·현종의 3대에 걸쳐 의관으로 활약하는 한편, 경기도내 읍(邑)의 수령을 6, 7차례나 역임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현종실록(顯宗實錄)』

  • - 『한국의학사』(김두종, 탐구당,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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