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공조판서, 우의정, 좌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재가(載可), 호는 매산(梅山)·낙파(洛坡)·영매(嶺梅). 도정(都正) 유심춘(柳尋春)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858년(철종 9) 정시문과에 급제한 뒤 부사·부호군을 지내고 1864년(고종 1)에 이조참판, 이듬해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남인계 인사 중용책에 따라 1866년 우의정에 이르렀다.
같은 해 주청사(奏請使)로 청나라에 다녀와 그곳 서양인들의 동정을 알렸는데, 병인양요 때에는 상주에 살던 아들 유주목(柳疇睦)에게 의병을 일으키게 하기도 하였다. 1867년 좌의정에 오르고, 1872년에는 판중추부사로 퇴관하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일성록(日省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계당집(溪堂集)』(유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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