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경상도부원수, 경상도도순문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때문에 왕의 미움을 받아 서인(庶人)으로 폐하여졌으나 곧 풀려났다. 우왕 때 밀직부사에 올랐으며, 1383년(우왕 9)에는 경상도부원수가 되어 왜구를 방어하다가 안동·예안 등지에서 패하고 부상을 입었다.
이해 12월에는 경상도도순문사로서 합포(合浦: 지금의 경상남도 마산)에 진수(鎭守)하였고, 다음 해에 함양에서 진주목사 박자안(朴子安)과 함께 왜구와 싸워 크게 이겼다.
이때 왜구가 축산도(丑山島)를 거점으로 자주 침구하므로 수군[船卒]을 두어 이를 방비하도록 하여 이후 왜구의 침략이 약하여지게 되었다.
또한, 못쓰게 된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게 하고, 둔전(屯田)을 개척하여 군량을 넉넉히 하였다. 무략(武略)이 있고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하여 염리(廉吏)의 표본이 되기도 하였다. 관직은 판밀직사사에까지 이르렀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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