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관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경상도부원수, 경상도도순문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사망 연도1387년(우왕 13)
  • 본관해평(海平)
  • 출생지미상
  • 주요 관직밀직부사|경상도부원수|경상도도순문사|판밀직사사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이희덕 (연세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경상도부원수, 경상도도순문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개설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충혜왕 때 좌정승에까지 오른 윤석(尹碩)의 증손으로,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윤지표(尹之彪)의 손자이고, 대호군 윤보(尹寶)의 아들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공민왕 말년에 왕의 총애를 받아 근시(近侍)하였는데, 1373년(공민왕 22) 공민왕이 한안(韓安)·홍륜(洪倫) 등으로 하여금 모든 비빈(妃嬪)들을 욕보이게 하면서 윤가관에게는 익비(益妃)를 범하도록 하였으나 끝내 거절하였다.

이 때문에 왕의 미움을 받아 서인(庶人)으로 폐하여졌으나 곧 풀려났다. 우왕 때 밀직부사에 올랐으며, 1383년(우왕 9)에는 경상도부원수가 되어 왜구를 방어하다가 안동·예안 등지에서 패하고 부상을 입었다.

이해 12월에는 경상도도순문사로서 합포(合浦: 지금의 경상남도 마산)에 진수(鎭守)하였고, 다음 해에 함양에서 진주목사 박자안(朴子安)과 함께 왜구와 싸워 크게 이겼다.

이때 왜구가 축산도(丑山島)를 거점으로 자주 침구하므로 수군[船卒]을 두어 이를 방비하도록 하여 이후 왜구의 침략이 약하여지게 되었다.

또한, 못쓰게 된 무기를 녹여 농기구를 만들게 하고, 둔전(屯田)을 개척하여 군량을 넉넉히 하였다. 무략(武略)이 있고 성품이 청렴하고 검소하여 염리(廉吏)의 표본이 되기도 하였다. 관직은 판밀직사사에까지 이르렀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