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이다. 충혜왕비 희비(禧妃)의 아버지이고, 충정왕의 외할아버지이다.
충혜왕이 재즉위(重祚, 1339년)하여 충숙왕비인 경화공주(慶華公主) 백안홀도(伯顔忽都)를 능욕하는 일이 벌어져 경화공주가 원나라로 돌아가고자 말을 사려고 할 때, 충혜왕이 이엄(李儼)과 윤계종으로 하여금 마시(馬市)를 금하게 하여 말을 팔지 못하게 한 점으로 보아 충혜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충목왕대에 들어와서 정치도감(整治都監)이 설치되어 규찰(糾察)을 강화할 때, 김규(金㺩)가 양광도안렴(楊廣道按廉)이 되어 이천현(利川縣)의 이속들로부터 윤계종이 이문(理問: 征東行中書省理問所의 우두머리이며 정4품의 벼슬)으로 공전(公田)을 뇌물로 받은 것을 적발하였으나 녹사(錄事) 안길상(安吉祥)이 윤계종의 옛 은혜를 생각하고 위에 보고하지 않았다가 내쫓긴 바 있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충혜·충목 두 왕대에 걸쳐 고려정계에 있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벼슬이 찬성사에 이르러 1346년(충목 2) 10월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