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때, 일본과 비행기불하교섭을 시도하여 일본 고관 사살과 주요 기관 폭격을 계획하였으며, 해방 이후 북한에서,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 상무상 등을 역임하다가 숙청된 비행사·관료·독립운동가.
생애 및 활동사항
1934년 6월 귀국 후 노동자와 연계하여 공산주의운동을 꾀하였다. 그리고 일본 육군비행기를 도입하여 일본요인을 사살하고, 관청을 폭격하는 대담한 계획을 세웠는바, 이는 중국에 있는 의열단과의 긴밀한 연락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하여 일본과 비행기불하교섭을 하였는데, 이때 내세운 명목은 민간항공사업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를 수상히 여긴 일본경찰의 조사에 의하여 윤공흠이 남경군관학교 출신임이 밝혀져 서울에서 잡혔다.
취조를 받던 중 남경군관학교 동기이며 의열단원인 김찬서(金燦瑞)·오용성(吳龍成)·김형렬(金亨烈) 등이 붙잡혀, 일본육군항공기를 불하받아 일제요인을 암살하려 하였음이 밝혀져서, 1934년 11월 동지들과 함께 재판을 받았다.
광복 후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 중앙위원을 지내고 1952년 11월 재정상에 임명되었다. 1954년 3월 상무상에 임명된 뒤 1956년 4월 당중앙위원이 되었으며, 1956년 9월 상무상에서 해임된 뒤 1957년 8월 당중앙위전원회의에서 김일성(金日成)을 비판(8월 종파사건)한 연안파의 주동자로 체포되어 숙청되었다.
참고문헌
- 『기려수필(騎驢隨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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