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길보

  • 역사
  • 인물
  • 고려 후기
고려후기 무안감무, 합포진변사, 검교상호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삼별초의 난
  • 본관칠원(漆原)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중랑장(中?將)|대호군|무안감무|합포진변사(合浦鎭邊使)|검교상호군(檢校上護軍)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미상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옥걸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후기 무안감무, 합포진변사, 검교상호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개설

본관은 칠원(漆原). 원나라로 도망갔다가 당시 세자였던 충렬왕을 만나 응견(鷹犬)으로 신임을 얻은 뒤 돌아와 군부판서(軍簿判書)·응양군상호군(鷹揚軍上護軍)에 오르기까지 갖은 악행을 저질렀던 윤수(尹秀)의 아들이다. 형은 윤길손(尹吉孫)이고, 아들은 윤환(尹桓)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270년(원종 11) 고려 정부가 몽고에 항복하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배중손(裵仲孫)·노영희(盧永禧) 등이 강화도에서 삼별초(三別抄)를 이끌고 반기를 들어 진도로 향하였다.

이 때 낭장으로서 전중서사인 이숙진(李淑眞)과 함께 노예를 모아 구포(仇浦:경기도 광주의 서쪽 90리 남양과 경계에 있다)에서 싸워 5명을 베고 부락산(浮落山) 바닷가에서 군사의 위세로 삼별초 무리들을 쫓았다.

본래 격구(擊毬)를 잘 쳐 원나라 태자(太子: 뒤의 仁宗)의 동궁(東宮)에 출입하였고, 이로 인해 충선왕의 총애를 받아 중랑장(中郎將)이 되었다가 곧바로 대장군에 올랐다.

1309년(충선왕 1) 왕이 사랑하는 숙비(淑妃)가 순비(順妃)로 인해 곤경에 빠졌을 때 원나라 태자에게 사정해 구해줌으로써 더욱 왕의 신임을 얻었다. 이에 대호군이 되었으며, 같은 해 원나라에 가서 동녀(童女)와 환자(宦者)를 바쳤다.

1320년(충숙왕 7)에는 원나라에 가 새매[鷂]를 바쳤다. 뒤에 환관 백안독고사(伯安禿古思)의 뜻에 거슬려 실직하고 무안감무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합포진변사(合浦鎭邊使)가 되었다.

1327년 심양왕 왕고(瀋陽王 王暠)의 사건이 수습되고 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시종했던 신하들에 대한 포상이 있을 때 검교상호군(檢校上護軍)으로서 2등공신에 봉하여졌다.

1332년 충숙왕이 1년 만에 복위한 뒤 전왕이 총애하던 신하들을 모두 잡아들임에 따라 잠깐 옥에 갇혔으나, 원나라의 요구로 곧 풀려났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