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무안감무, 합포진변사, 검교상호군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 때 낭장으로서 전중서사인 이숙진(李淑眞)과 함께 노예를 모아 구포(仇浦:경기도 광주의 서쪽 90리 남양과 경계에 있다)에서 싸워 5명을 베고 부락산(浮落山) 바닷가에서 군사의 위세로 삼별초 무리들을 쫓았다.
본래 격구(擊毬)를 잘 쳐 원나라 태자(太子: 뒤의 仁宗)의 동궁(東宮)에 출입하였고, 이로 인해 충선왕의 총애를 받아 중랑장(中郎將)이 되었다가 곧바로 대장군에 올랐다.
1309년(충선왕 1) 왕이 사랑하는 숙비(淑妃)가 순비(順妃)로 인해 곤경에 빠졌을 때 원나라 태자에게 사정해 구해줌으로써 더욱 왕의 신임을 얻었다. 이에 대호군이 되었으며, 같은 해 원나라에 가서 동녀(童女)와 환자(宦者)를 바쳤다.
1320년(충숙왕 7)에는 원나라에 가 새매[鷂]를 바쳤다. 뒤에 환관 백안독고사(伯安禿古思)의 뜻에 거슬려 실직하고 무안감무로 좌천되었다가 다시 기용되어 합포진변사(合浦鎭邊使)가 되었다.
1327년 심양왕 왕고(瀋陽王 王暠)의 사건이 수습되고 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동안 시종했던 신하들에 대한 포상이 있을 때 검교상호군(檢校上護軍)으로서 2등공신에 봉하여졌다.
1332년 충숙왕이 1년 만에 복위한 뒤 전왕이 총애하던 신하들을 모두 잡아들임에 따라 잠깐 옥에 갇혔으나, 원나라의 요구로 곧 풀려났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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