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부판윤, 우참찬,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그 뒤 형조판서에 승진해 오랫동안 미결로 있던 소송 사건을 신속히 처리해 주위로부터 칭송을 받았다. 이어서 한성부판윤·우참찬·예조판서·공조판서 겸 종부시제조·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716년 사건 처리에 공평하지 않다는 탄핵을 받고 한 때 파직되었으나, 뒤에 좌참찬이 되어 다시 판의금부사를 겸하였다.
이 때 과옥사건(科獄事件)이 일어나 이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꺼려 회피할 때, 공평하고 정확하게 조사해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의금부에서 수사한 일을 잘못 처리했다 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성품이 단정하고 강직하여, 직간할 때 왕의 뜻에 거슬려 엄한 교지를 받아도 조금도 꺼리지 않았다 한다.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릴 만큼 영특하고 총명했으며 경서와 문장에 능하였다. 특히, 국조전례(國朝典禮)에 밝았고, 문장은 조리가 있었으며, 시도 간아(簡雅)하였다.
해서·초서·전서·예서에 재주가 있어 한 때 사대부들 사이에 윤덕준의 금석지각(金石之刻)이 유행했다 한다. 말년에 서사(書史)로서 여생을 보냈다. 뒤에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요청으로 복관되었다.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이계집(耳溪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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