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성주목사, 지중추부사,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어 검열 · 형조정랑을 거쳐 1508년(중종 3) 지평(持平), 1509년 집의(執義) · 응교를 역임하고 임피(臨陂, 현재의 전북특별자치도 군산 일대)에 어사로 파견되었다. 1514년 승지, 1517년 황해도관찰사를 거쳐 1518년 대사헌에 이어 진향사(進香使)로 명나라에 다녀온 뒤, 1519년 공조참판이 되었다.
1520년 전라도관찰사로 재임하던 중 조광조(趙光祖)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이유로 김식(金湜)이 유배지에서 도주한 사건에 연루되고 조광조 일파로 몰려 파직되었다. 1524년 평안부사로 치적이 있어 향표리(鄕表裡) 1습(襲)을 하사받았고, 1526년 강원도관찰사에 이어 삼척 · 진주 등의 지방관으로 전전하였다.
1531년 삼간(三奸)이라 불리던 심정(沈貞) · 이항(李沆) · 김극핍(金克愊) 등이 파직되자, 다시 중앙으로 등용되어 1532년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역임하였다. 1537년 성주목사에 이어 1539년 지중추부사 · 공조판서로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다시 명나라를 다녀온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시호는 공간(恭簡)이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사마방목(司馬榜目)』
-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 『해동잡록(海東雜錄)』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청선고(淸選考)』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