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766년 대사간이 되자 신광집(申光緝)의 무죄를 논하다가 다시 전리에 방축되었고, 1772년 갑산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3년 후에는 대사헌이 되었다. 그 뒤 대사성·부제학을 거쳐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776년(정조 즉위년) 경기도관찰사로 재직 시 당론을 논하다가 다시 남해현에 유배되었으나 이듬해 풀려났다.
그 뒤 개성유수로 발탁되었다. 형조판서로 있을 때 당론을 다시 논하다가 삼화로 유배되었고, 이듬해인 1787년(정조 11) 풀려나서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 김종수(金鍾秀)·심환지(沈煥之) 등과 함께 정치활동을 하였다. 1795년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이 되었다.
젊었을 때부터 나라의 고사(故事)를 잘 알았고 군국(軍國)의 기무(機務)에 정통하였으며, 개성이 뚜렷하여 옳다고 생각하던 당론을 일삼았기 때문에 파란많은 생애를 보냈다. 편저로는 『향례합편(鄕禮合編)』이 있다. 시호는 문익(文翼)이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정조실록(正祖實錄)』
- 『속조야집요(續朝野輯要)』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청선고(淸選考)』
- 『국조인물지(國朝人物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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