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숙왕·충혜왕·충정왕의 3대에 걸쳐 세번 공신이 되었다. 1326년(충숙 복위 13) 7월 좌상시(左常侍)로서 행성 설치를 저지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어 토지와 노비를 받고 부모·처자에게까지 작위가 하사되었다.
1328년 9월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원나라에서 돌아왔다. 이때 원나라에서 고려에 징병하고자 하여 홍백안불화(洪伯顔不花)와 같이 문첩(文牒: 관아에서 쓰는 서류)을 가지고 돌아가게 하였는데, 윤신계는 귀국하자 숨고 나타나지 않았다.
1342년(충혜 복위 3) 9월 개성윤(開城尹)으로 조적의 난 때 호종한 공으로 1등공신이 되어 벽상(壁上)에 도형(圖形)되고 아들에게는 7품(品)을 주고, 아들이 없으면 대신 조카나 사위에게 8품을 주고, 토지 100결과 노비 10구를 주게 하였다.
1349년(충정 1) 윤7월 도첨의찬성사(都僉議贊成事)가 되었고, 8월 성근협찬좌명공신 봉성군(誠勤恊贊佐命功臣鳳城君)에 봉해졌다. 1350년 전 찬성사로서 원나라에 하정사(賀正使)로 파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