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일제강점기 중추원촉탁, 경학원 부제학 등을 역임한 관료. 유학자.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제강점 이후, 1911년 이왕직 장사계 제의실 사무관이 되었고, 1914년에는 서무계 능무실 사무관으로 전보되었다가, 1915년 3월 퇴직했다. 1911년 박영효 등이 문예구락부를 조직할 때 취지서 기초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문예구락부 결성과 함께 저술장(著述長)을 맡았다. 1912년 8월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응소 군인과 가족을 위로하고 후원하기 위해 조직된 경성군인후원회에 기부금을 냈다. 1917년 7월부터 1928년까지 중추원 촉탁으로 근무했다. 특히 1922년에는 유림을 통제하기 위해 조직된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 강사로 활동했다. 1925년 7월 경학원 부제학이 되었다. 1928년 쇼와천황즉위기념대례기념장을 받았다. 1929년 3월 17일 사망했다.
참고문헌
- 『친일인명사전』2(민족문제연구소, 2009)
- 『대한제국관원이력서』
- 『구한국관보』
- 『조선총독부관보』
- 『조선총독부급소속관서직원록』
- 『이왕직직원록』
- 『경학원잡지』1(1913.12)
- 『우당문초』
- 『우당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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