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말사이다. 651년(진덕여왕 5) 원효(元曉)가 창건하였고, 930년(경순왕 4) 감악(感岳)이 중창하였다. 그러나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의 역사는 자세히 전하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규모가 작은 칠성각과 관심당(觀心堂) · 요사채가 있다. 이 중 대웅전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정면 3칸, 측면 2칸인 다포집 계통의 것으로 조선 중기의 건축이다. 대웅전 내부의 중앙에 닷집을 마련하고 2002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봉안하였다. 또한 2001년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에는 1684년(숙종 10)에 조성하고 1729년(영조 5)에 중수한 일을 적은 화기(畵記)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법당을 중창할 때 어떤 목공이 찾아와 절을 짓는 일을 자청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석 달 동안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목침만을 만들었으므로 답답하게 여긴 이 절의 승려는, 목공을 시험하기 위하여 목침 하나를 몰래 숨겼다. 그런데 목침 만들기를 다한 목공이 수를 세어 보더니 갑자기 안색이 변하면서 “내 정성이 부족하여 목침이 하나 모자라니 이와 같은 귀중한 법당을 건립할 수 없다.”고 하면서 연장을 챙겨 떠나려 하였다. 그때 승려가 숨겨 놓은 목침을 내놓으면서 사죄하므로, 명공(名工)은 마음을 돌려 이번에는 목침을 조립해 나가는데, 힘들이지 않고 건물의 틀을 짜서 올렸다고 한다. 이 법당은 못을 전혀 쓰지 않고 조립한 것이므로 일명 목침절이라고 불린다. 대웅전 밑의 땅에서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찬 영천(靈泉)이 샘솟고 있으며, 이 절 오른쪽의 암봉(巖峯) 셋 중 가운데 있는 봉우리를 새신바위(鳥神巖)라고 한다. 원효가 이 바위에 올라가서 지금의 절터를 잡았다고 한다. 또 대웅전을 지은 명공 법당을 단청할 때 7일 동안은 절대로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했는데, 그가 안으로 들어간 뒤에 아무런 기척이 없으므로 궁금증을 못 이긴 승려가 7일째 되는 날, 문틈으로 안을 엿보았더니 새 한 마리가 붓을 물고 날아다니면서 벽화를 그리다가 일을 끝내지 못한 채 날아가 버렸는데, 그 새가 자취를 감춘 곳이 바로 이 바위였으므로 새신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