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1책. 목판본. 후손 조운(肇運)이 편집하고, 1909년에 순우(淳愚)·남숙(南璹) 등이 간행한 『원고세고(元皐世稿)』에 합록되어 있다. 권두에 김도화(金道和)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후손 종운(宗運)·순우 등의 발문이 있다. 이 문집이 수록되어 있는 『원고세고』는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시 52수, 소(疏) 1편, 서(書) 7편, 설(說) 2편, 서(序) 1편, 기(記) 2편, 제문 1편, 부록으로 유사·묘갈명·묘지명·만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에는 남상소(南尙召)·배정휘(裵正徽)·김세일(金世鎰) 등의 시를 차운(次韻)하여 지은 것과, 「제연계첩(題蓮桂帖)」·「세병관습조(洗兵館習操)」·「객관우우(客館遇雨)」 등이 있다. 「이존재작박도사광석가근차(李存齋作朴都事壙石歌謹次)」·「유공유수탄(踰恐有愁灘)」 등 장편도 실려 있다.
소의 「청진기잉걸사직소(請賑飢仍乞辭職疏)」는 1689년(숙종 15) 강진현감으로 재직할 때 전국에 흉년이 들어 조정에서 구제책을 시행하자 자신이 관할하는 지역의 처참한 실정을 자세히 보고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려 사직을 청원하고 있다.
서(書) 중 「상권상국(上權相國)」은 강진현감으로 재임하면서 기민(飢民)들을 구제하기 위해 관가 창고의 곡식을 낸 일이 뒤에 조정에 잘못 전달되어 논란이 일자, 영의정 권대운(權大運)에게 해명하는 내용이다.
그 밖에 이현일(李玄逸)·유세철(柳世哲)·조덕린(趙德鄰)·권해(權瑎) 등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강진현감으로 재임중 대동미(大同米)의 수납을 정해진 기간에 완수하지 못해 하옥되었다가 풀려난 뒤의 동정을 알리고 있다.
설에는 정원을 가꾸면서 지은 「종죽설(種竹說)」·「이원설(理園說)」 등이 있다. 기에는 1698년 해남현감으로 부임하여 어촌의 낡은 학교 건물을 수리하고 나서 지은 「고협재중건기(鼓篋齋重建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