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와 충청도의 인사들이 양도의 흥학을 고취할 목적으로 1908년 1월에 조직한 기호흥학회(畿湖興學會)의 회장인 김윤식(金允植)은 유길준·김가진·오세창 등의 인사들과 제휴하여 교육의 진흥으로 민지를 계발하고 민족의 실력을 배양하는 것이 국가의 장래에 유익한 활로임을 고취하고자 1907년 11월에 흥사단(興士團)을 조직하였다.
흥사단에서는 국민의 기본교육을 발달시키기 위하여 장차 사범학교를 설립, 교원을 양성하고 각 사립학교를 통관(統管)하려는 계획을 세운 바 있다.
그리하여 일반 국민에게 교육을 보급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여 조직된 흥사단에서는 1908년 8월 한성에 융희학교를 설립하고 예비교사과정(豫備敎師課程)을 개설하여 매년 학부(學部)에서 실시하는 교원시험검정에 대비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융희학교의 수업연한은 24개월이고, 입학자격은 연령 20세 이상 40세 이하로 신체건강한 자로 하였으며, 교과목은 수신·국어·지지·역사(내외)·물리·화학·박물·법학통론·경제학·작문·심리학·수학·부기·소학교수법·도화·창가·체조·외국어·토론 등이었다.
한편, 기호흥학회는 1908년 6월에 기호학교(畿湖學校)를 한성에 설치하고 3년제의 본과와 1년 6개월 기간의 특별과(사범과)를 개설하여 각각 중등교육과 초등교원 양성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런데 1909년도에 이르러 융희학교는 교사(校舍)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되고, 기호학교는 재정난으로 어려움에 직면하여 두 학교가 존속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그리하여 융희학교와 기호학교는 1910년 9월에 병합되어 사립중앙학교(私立中央學校)로 개명되어 현재 서울에 있는 중앙 중·고등학교로 이어져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