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신(應身)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나타난 부처의 몸을 말한다. 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과 달리 응신은 중생의 근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나타난다.
대승불교에서는 법신(法身), 즉 진리 그 자체인 부처의 몸이 교리적으로 중시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신과 달리 형체를 가진 모습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의 몸도 염두에 두게 되었다. 이러한 두 유형의 불신(佛身)은 반야경 계통에서는 주로 법신과 색신(色身, rūpa-kāya)으로 대비되어 언급되는데, 이중 색신을 구원론적 함의(含意)에서 해석한 용어가 바로 응신이다.
응신은 응화신(應化身)이라고도 하는데, 텍스트나 주석자에 따라서는 응신과 화신(化身)을 구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이 경우 화신은 상호를 구비하지 않고 일정한 형식 없이 다양한 모습을 취하며 중생을 구제하는 불신인 데 비하여, 응신은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출현하는 부처라는 의미를 가진다.
인도에서 출현한 석가모니불은 응신이며, 과거의 7불을 비롯한 많은 부처와 미래의 미륵불도 모두 응신에 속한다. 이 응신들은 상대방에 따라 그를 화도(化導)하는 데 편리한 모습으로 나타나 설법(說法)하는 부처로서 32상(相)과 80종호(種好)라는 특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응신이라는 용어는 승조(僧肇, 384~414)의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 서문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는 여기에서 "법신은 형태가 없으나 다양한 모습으로 함께 나타나고…(중생의 근기에) 감응한 형태를 보고 그것을 일러 몸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후 승조의 불신설은 진응이신설(眞應二身說)로 널리 사용된다.
이후 인도 유가행파(瑜伽行派)의 3신설이 전래됨에 따라 'nirmāṇa-kāya'의 번역어로 '응신'이 채택되었다. 이후 현장(玄奘, 602~664)은 이 용어를 '변화신(變化身)'으로 번역하였으나,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다.
천태종에서는 유가행파의 3신설을 장(藏) · 통(通) · 별(別) · 원(圓)의 4교판에 맞추어 4신설로 주장하기도 했는데, 이 경우 응신은 승응신(勝應身)과 열응신(劣應身)의 두 종류로 대별된다. 승응신은 초지(初地) 이상의 보살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부처로서 통교(通敎)에 대응하며, 열응신은 범부(凡夫)와 이승(二乘)과 지전보살(地前菩薩)을 위하여 법을 설하는 부처로서 장교(藏敎)에 대응한다. 이 경우 승응신은 실제로는 보신(報身)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응신은 오히려 열응신만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통일신라의 논사(論師) 원효(元曉, 617-686)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응신을 인식의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이에 따르면 응신은 분별사식(分別事識)에 의하여 범부와 이승이 보는 바이며, 생각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특징을 지닌다. 마음의 변화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응신은 각자의 마음 속 전식(轉識)이 동하여 나타나게 되는 것이지만, 이것이 마치 밖에서부터 온 것처럼 생각하고 나타난 대상에 형태와 물질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철저히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응신은 매번 똑같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세상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생활 양식에 순응하여 나타나는 것으로, 범부의 거칠어진 마음을 순화하기 위해 나타나는 본각(本覺)의 다른 모습이라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