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사옹원정,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자릉(子陵)
  • 현기(玄磯)
인물/전통 인물
  • 본관연안(延安, 지금의 황해도 연백)
  • 사망 연도1652년(효종 3)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한성부판윤
  • 출생 연도1579년(선조 1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동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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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사옹원정,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릉(子陵), 호는 현기(玄磯). 이세범(李世範)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국주(李國柱)이다. 아버지는 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 이호민(李好閔)이며, 어머니는 윤문로(尹文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10년(광해군 2)에 현감으로서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17년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하는 데 대하여 백관(百官)으로부터 의견을 수렴하였는데, 현감으로 있던 이경엄은 “이 일은 중대하여 소관들의 의논할 바가 아니니 의정부에서 잘 처리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1624년(인조 2)에 배천군수로 있으면서 불근(不謹)하다 하여 사헌부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1628년 가례(嘉禮) 때 사옹원정(司饔院正)으로 있던 중 가자(加資)를 받았으나, 얼마 뒤 가도(椵島)의 문안사(問安使)로서 까닭없이 지체하여 파직되었다.

1647년 연천군(延川君)으로 있으면서, 사간원으로부터 수령으로 천거한 자가 적합하지 못하다는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649년(효종 즉위년)에 한성부판윤에 임명되었고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인조실록(仁祖實錄)』

  •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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