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운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호조정랑, 사간원정언, 평안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군서(君瑞)
  • 정양당(靜養堂)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619년(광해군 11)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호조정랑|사간원정언|평안도도사
  • 출생 연도1556년(명종 1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동 (영남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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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중기에, 호조정랑, 사간원정언, 평안도도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군서(君瑞), 호는 정양당(靜養堂). 효령대군(孝寧大君) 이보(李補)의 5대손이며, 영신수(永新守) 이이(李怡)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명원군(明原君) 이호(李顥)이고, 아버지는 첨지(僉知) 이극성(李克成)이며, 어머니는 임형수(林亨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95년(선조 2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01년 10월 양주의 경차관(敬差官)으로 있으면서 양전(量田)을 옳게 시행하지 못하여, 영사(領事) 윤승훈(尹承勳)으로부터 탄핵을 받았다. 그 해 11월 호조정랑에 임명된 뒤 사간원정언을 거쳤다.

12월 정인홍(鄭仁弘)의 문객인 문경호(文景虎)가 상소를 올려 기축년(1589) 역옥 때 최영경(崔永慶)의 옥사에 성혼(成渾)이 간여하였다고 하면서 죄를 성혼에게 돌리자, 헌납 이진빈(李軫賓), 정언 김지남(金止男)과 함께 이를 논박하다가 교체되었다.

1604년 9월 예조좌랑, 10월 평안도도사에 임명되었다. 1616년(광해군 8) 내자시정으로 있을 때 사헌부로부터 사람됨이 우열(愚劣)하여, 일사(一司)의 장관으로는 부적당하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 『국조방목(國朝榜目)』

  • - 『대동야승(大東野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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