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근임(謹任). 건원릉참봉 이봉남(李鳳男)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이항복(李恒福)의 문하에서 공부하면서 김상헌(金尙憲) 등과 교유하였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음사(蔭仕)로 관직에 올라 수령직을 역임하였다. 1604년(선조 37) 우봉현령(牛峯縣令)에 임명되었으나 이듬 해 2월 전임 군자감판관 때의 해유(解由)가 나오지 않아 체차된 일도 있다. 광해군대에 계축옥사가 일어나는 등 북인의 전권이 심하여지자 경기도 영평(永平)에 퇴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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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
인간 세
부수 一 / 총획 5
宗
마루 종
부수 宀 / 총획 8
ab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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