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이녕(李寧)의 아들이다. 그림을 잘 그려 명종의 총애를 크게 받았다. 왕명으로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그린 바 있으며, 고유방(高惟訪)과 함께 항상 왕의 곁에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고려사(高麗史)』에 명종이 그를 가리켜 “우리나라를 빛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그가 아니었으면 삼한(三韓)의 도화(圖畫)의 맥이 끊어졌을 것이다.”라며 극찬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하는 유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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