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복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 조선 후기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고, 사복, 훈련첨정 등을 역임하다가 팔공산전투에서 전사한 무신·의병장.
이칭
  • 모석(慕石), 모의당(慕義堂)
  • 유사(有司)
인물/전통 인물
  • 관련 사건팔공산 전투(임진왜란)
  • 본관경주(慶州)
  • 사망 연도1596년(선조 29)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훈련첨정(訓鍊僉正)
  • 출생 연도1548년(명종 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신동호 (한학자)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하였고, 사복, 훈련첨정 등을 역임하다가 팔공산전투에서 전사한 무신·의병장.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유사(有司), 호는 모석(慕石) 또는 모의당(慕義堂). 아버지는 가선대부(嘉善大夫) 이윤(李倫)이며,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조호익(曺好益)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박학하여 섭렵하지 않은 글이 없었으며, 특히 이수(理數)와 서상(筮象)에 관한 책을 탐구하였다. 일찍이 『육도(六韜)』와 『삼략(三略)』 등의 명서를 공부하여 지략을 넓히고 궁마술(弓馬術)을 익혀 국란에 대비하였다.

1586년 산사에서 글을 읽다가 혜성(彗星)이 뻗치는 것을 보고 병란(兵亂)을 예견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하여 양곡 300여 섬을 준비하여 북산 굴 속에 저장해두었다. 그리고 1592년 정월에 이경한(李景漢)·이백인(李伯仁) 등과 안압지(雁鴨池)에 모여 국란이 있으면 의병을 일으킬 것을 약속하였다.

4월에 왜병이 침입하자 모의당에 모여 의병을 일으키고, 준비하여둔 양곡을 군량미로 사용하였다. 총병(摠兵)이 되어 안강·월성 등지에서 왜적을 격파하고 단주성(檀州城)에서 대승을 거두었으며, 화왕산성(火旺山城)의 곽재우(郭再祐)와 합세하여 적을 무찔렀다.

유성룡(柳成龍)의 추천으로 사복(司僕)이 된 뒤, 1594년 형제가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첨정(訓鍊僉正)이 되었다. 이듬해 이여송(李如松)과 합군하여 남한산성에서 적을 대파하였다. 1596년 팔공산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적의 유탄에 맞아 전사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모석유고』 1책이 있다.

참고문헌

  • - 『선조실록(宣祖實錄)』

  • - 『모석유고(慕石遺稿)』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