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립(士立). 종실 청천수(淸川守) 이인수(李麟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희천(李希天)이다. 아버지는 이헌(李憲)이며, 어머니는 권세종(權世種)의 딸이다.
1601년(선조 34)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조좌랑 겸 춘추관 기사관(吏曺佐郞兼春秋館記事官)으로서 임진왜란의 병화로 불타버린 실록의 인본작업시 편수관으로 참여하였고, 1605년에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정언·원손강학관(元孫講學官)을 거쳐 1606년 충청도암행어사가 되었다.
이조전랑이 되어서는 뇌물을 받았다 하여 최유원(崔有源)의 탄핵을 받았다. 이어 북인(北人) 유영경(柳永慶)·기자헌(奇自獻)의 당이 되어 태인현감(泰仁縣監)·태안군수(泰安郡守)·서흥현감(瑞興縣監)·의주부윤(義州府尹) 등을 역임하였다.
1616년(광해군 8)에 의주 대안보(代安堡)에 침구하여 노략질한 달자(韃子)를 쳐서 12명을 목베고 말 170필을 노획하였다. 1618년에는 와붕(窩棚: 움집처럼 만든 임시 처소)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실시하여, 진강위(鎭江衛: 토관직의 주둔지)의 구탄(丘坦)을 격노케 하였다 하여 나문(拿問: 체포되어 심문을 받음.)되었다.
이는 평안병사 성우길(成佑吉)의 아들과 사위 등이 사냥나갔다가 발각되어 의주부에 첩문을 보내온 것을 조정에 보고하지 않은 데서 발단되었다.
가승지(假承旨)가 되어 무과전시(武科殿試)의 참시관이 되었는데, 이 때 과거에 부정이 있었다 하여 탄핵되었다. 1623년(인조 1) 울산부사(蔚山府使)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