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녹숭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지평,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여절(勵節)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전의(全義, 지금의 충청남도 연기)
주요 관직
장령(掌令)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지평, 장령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여절(勵節). 이작(李作)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의흠(李宜洽)이다. 아버지는 이신효(李愼孝)이며, 어머니는 성우(成栩)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75년(성종 6)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483년 지평으로 있으면서 이조·병조의 탐오 관리 금고법(禁錮法)을 법대로 시행하지 않는 수즙(修葺: 집을 고치고 지붕을 새로 이는 일을 일컫는 것으로써 법을 임의로 고치고 적용함을 이름.)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였다.

1488년(성종 19)에는 직전(職田)·사사전(寺社田)의 환급(還給: 되돌려 줌)에 대해 직전은 관에서 수납하는 것으로, 한 두 해 풍년들었다 하여 갑자기 환급하였다가 다시 수재와 한재를 만나면 부득이 환수해야 하니 이는 국용(國用)을 지탱하는 방도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이 외에도 군적(軍籍)의 개편·사노비(私奴婢) 속공(屬公) 문제·인사문제 등 대전(大典)체계에 의한 법치를 주장하였다. 1489년에 장령(掌令)이 되어, 동생 이명숭(李命崇)의 처 홍씨(洪氏)와 기계부정(杞溪副正)의 처 사이에 소송사건이 일어나자 이로 인하여 혐의를 받았는데, 이는 대개 이녹숭의 아들이 동생 이명숭에게 양자로 갔기 때문이다.

1516년(중종 11)에 사섬시정(司贍寺正)을 거쳐 나이 70이 넘었으므로 검직(檢職)을 제수받았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중종실록(中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