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지지(至之). 호는 복재(復齋) 또는 양심헌(養心軒). 영산현 온정리(靈山縣溫井里)에서 출생. 아버지는 공조참의(工曺參議)에 추증된 이석경(李碩慶)이며, 어머니는 진주하씨(晉州河氏)로 수군우후(水軍虞侯) 하함(河艦)의 딸이다. 정구(鄭逑)의 문인이다.
1580년(선조 13) 향시에 합격한 뒤 정시(庭試)에 나가지 않고 학문 연구에 몰두했다. 1589년에 학명이 높아 지방의 선비들을 모아 회연당(檜淵堂)에서 심경(心經)을 강론하고 이듬 해에는 근사록(近思錄)을 강론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노모를 업고 피란하여 안전하게 보호한 뒤 이듬 해 김면(金沔)의 진중에 나가서 위장(衛將)으로 활약하였다. 1600년 고령향시(高靈鄕試)에 스승의 권유로 나가 장원하였고, 순찰사(巡察使) 이시규(李時揆)가 효행으로 조정에 천거했으나 나가지 아니했다.
무흘서당(武屹書堂)에서 예설을 강론하며 후진을 교육하며 삭망고강법(朔望考講法)을 만들어 시행했다. 뒤에 덕봉서원(德峰書院)에 제향(祭享)되었으며, 저서는 여러 번 난리를 격는 동안 거의 유실되고 다만 『복재집(復齋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