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10월 9일 충청북도 영동 출생으로,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영동중고등학교를 거쳐 1951년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에 임관해 미국보병학교를 졸업했으며, 1958년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발하자 육군 소령으로 군사령관 보좌관, 1962년 육군참모총장 특별보좌관 등을 맡았고, 1963년 육군 중령으로 예편했다. 같은 해 민주공화당 창당에 참여해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충청북도 영동 지역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후 1970년대 대한중석(大韓重石) 이사, 고려합섬(高麗合纖) 이사 등을 거쳐 삼익주택건설주식회사(三益住宅建設株式會社) 부회장, 한국건설업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건설업체의 중동 진출에 기여했다.
1981년 구 공화당 인사를 규합해 한국국민당을 창당했으며, 국민당의 공천을 받아 제11대 국회의원에 출마, 보은·옥천·영동에서 당선되었다. 이후 국민당 원내총무·충북도당위원장·당무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1982년 한·브라질 의원 친선협회장, 1984년 성림기업(盛林企業) 회장을 역임했다.
1987년 국민당과 민주정의당의 합당 때 참여해 민정당 국가정책평가위원을 역임했으며,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정당 후보로 전국구에 당선되었다. 1988년 한·요르단 의원 친선협회장, 민정당 중앙집행위원을 역임했다.
1990년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통일민주당의 3당 합당에 참여해 민자당 소속이 되었고,1991년 대전세계박람회 국회지원 특위 위원장, 민자당 국책연구원장을 역임했다. 1992년 민자당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민자당을 탈당해 새한국당을 창당, 최고위원이 되었으며, 같은 해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1995년 김대중의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의 후원회장을 맡았으며,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참여했다. 1997년 1월 15일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