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2년 9월 14일 서울 출생으로,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1942년 평양 제2공립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학해 1944년 10월 도쿄[東京]의 호세이대학[法政大學] 예과를 수료했다. 해방 직후, 1945년 9월 보성전문학교 경제과 2학년에 편입학해, 1947년 6월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다시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2학년에 편입학, 1949년 9월 졸업했다. 1961년 미국 메릴랜드대학, 1963년 조지워싱턴대학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대한민국 초대 국무총리서리 이윤영(李允榮) 목사의 딸 이정숙과 결혼했다.
기독교인으로 일찍이 적십자 활동에 투신해, 한국전쟁 중인 1951년 미국 적십자사 국제사업 한국대표가 되었고, 1952년 대한적십자사 고문서리가 되었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에 의한 전쟁포로 송환교섭 때 국제적십자단 한국수석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1955년 대한적십자사 청소년부장 겸 서울지사 사무국장, 1957년 제19차 국제적십자회의 한국대표, 1958년 청소년지도자국제회의 대표로 활동했으며, 1959년 재일교포 북송저지를 위해 제네바회의에 대표로 참석, 한국의 입장을 대변했다. 1961년부터 1965년까지 제16∼19차 유엔총회 한국대표단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1962년 주유엔 한국대표부 및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으로 임명되었다. 1965년 외무부 의전실장, 1970년 주(駐) 튀니지 특명전권대사가 되었다.
1971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시작되자, 1972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복귀해 그 해 8월 남북적십자회담 수석대표로 평양을 방문했다. 이후 약 4년 동안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재직했다.
1976년부터 1980년까지 인도 대사로 활동했으며, 1980년 국토통일원 장관, 1982년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쳐, 같은 해 외무부 장관이 되었다. 1983년 10월 9일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의 서남아 및 오세아니아주 6개국 순방외교 때 수행원으로 동행해 버마(현재의 미얀마) 아웅산묘소 폭탄테러사건으로 순직했다. 10월 13일 순직자 17명과 함께 국민장으로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2014년 6월 아웅산 현지에 대한민국 순국사절추모비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