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 명칭은 미얀마연방공화국(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으로, 1989년 6월 버마(Burma)에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인도지나반도 서북부에 위치하며 해안선의 길이가 1,930㎞에 달한다. 면적은 67만 6578㎢, 인구는 5632만 206명(2015년 현재), 수도는 양곤(Yangon)이었으나 신행정수도 네피도(Nay Phi Daw)가 건설되었다.
종족구성은 미얀마족이 72%를 차지하고, 카렌족(Karen) 7%, 카친족(Kachin) 2% 등 소수 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용어는 미얀마어이고, 종교는 불교가 86%로 압도적이고, 이슬람교 4%, 힌두교 4%, 기독교 2% 등이다.
기후는 대체적으로 열대계절풍 기후이나, 고도가 높은 곳은 온대성 기후를 나타낸다. 1차산업이 주이고, 농산물가공업과 광산자원을 활용한 중화학공업 등의 육성을 공업화의 기본정책으로 삼고 있다. 쌀·티크·목재 이외 원유·주석·연·아연·동·석탄 등이 풍부한 동남아 굴지의 자원부존국이다.
1962년 혁명정부에 의하여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채택된 이후 경기침체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72년부터 자유주의적 제도를 일부 도입한 뒤 외자도입과 쌀증산 성공 등에 힘입어 1977년부터 현저한 회복기조를 보여왔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448억 달러이고, 1인당 국민소득은 1,113달러이다.
이 나라는 대통령 중심제로, 2010년 총선이 실시되어 2011년 의회가 구성됐다. 정당은 민주국민연맹(NLD) 등 13개가 있다.
미얀마의 역사는 전국에 산재하고 있는 여러 종족의 이동의 역사이다. 미얀마에는 서력기원을 전후하여 인도로부터 농업기술과 불교·힌두교가 전하여졌고, 이후 몬족·모족·미얀마족이 차례로 흥기하였다.
18세기에는 몬족이 다시 미얀마족을 정복하였으나, 곧 미얀마족이 다시 전국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때까지 다고웅이라고 불리던 도시를 랑군으로 개명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 미얀마는 점차 영국의 침입을 받아 쇠락해갔고, 1885년 마침내 영국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1886년 영국령 인도에 편입되었다가 1937년 인도에서 분리되어 영 직할령이 되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1948년 1월 4일 영연방으로부터 탈퇴하여 완전독립을 선언하였다. 1962년 3월 네윈(NeWin) 장군의 쿠데타로 1948년 이후 집권해 온 우누(UNu) 정권이 전복되었다.
네윈 혁명위원회 의장은 군사혁명정권을 수립하고 삼권을 장악하였고, 그 뒤 미얀마사회주의계획당을 결성하고 사회주의헌법의 제정을 거쳐 1974년 민정이양을 실시하였다.
1981년 11월 네윈 대통령은 건강악화 및 평화적 정권교체 열망으로 우 산유(USanYu)에게 대통령직을 이양하고 당의장직만 보유하였으나, 카리스마적 지도력으로 계속 실권을 장악해 왔다. 1988년 네윈의 사임을 요구하는 학생폭동이 일어난 4,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1988년 소몽 장군에 의한 쿠데타로 반정부운동 세력이 제압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 아웅산 수지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92년 4월 집권한 탄쉐(Than Shwe) 국가평화발전위원회 의장이 장기정권하고 있으며, 2008년 5월 헌법을 제정하였다. 2015년 11월 총선에서 아웅산 수지가 이끄는 제1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상하원의 과반의석을 차지해 정권교체를 하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중도중립을 표방하며, 1948년 유엔에, 1992년에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여 순수 비동맹 엄정중립주의를 기조로 독립자주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초강대국에 대한 불신감으로 미국·소련(지금의 러시아)과의 관계는 일정거리를 유지한 반면, 지정학적 이유로 대중관계를 최고의 외교문제로 중요시해 왔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적은 일본·서독·오스트레일리아 등과의 실질관계를 확대하고 있고, 동구권과의 협력관계도 유지해 왔다.
우리나라는 1961년 8월 미얀마와 영사관계를 수립하였고, 1962년 9월 총영사관을 개설하였다. 1975년 5월 16일 정식으로 수교하였으며, 2007년 현재 상주 대사가 주재하고 있다. 1983년 10월 전두환 대통령이 미얀마를 공식방문한 적이 있으나 아웅산암살폭발사건이 일어나 우리나라 정부요인이 희생당한 적이 있다.
양국은 1964년 6월에 무역 협정, 1972년 1월에 뉴스교환 협정, 1978년 1월 항공운수 협정, 2002년 2월에 이중과세방지 협정, 2006년 9월에 항공 협정을 체결하였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미얀마 수출액은 8억 달러로 주종목은 수송·산업기계·직물·석유화학제품 등이고, 수입액은 5억 8000만 달러로 주종목은 의류·섬유제품·농수산물 등이다.
1981년 현대건설이 7500만 달러 상당의 미얀마 최대의 댐공사를 수주한 이래 우리나라 기업의 미얀마 진출이 활발해졌으며, 2007년 현재 ㈜대우, 현대종합상사, 효성, 세계물산 등 70여 개 업체가 진출해 있으며, 724명의 체류자가 있다.
양국의 문화교류로는 1983년 10월 우리나라 민속예술단의 미얀마 방문공연이 있었고, 1985년 2월 우리나라 상무(尙武) 축구단의 방문 친선경기와 1986년 3월 우리나라 태권도 시범단의 방문행사 등이 있다. 제24회 서울올림픽에는 7명의 미얀마 선수단이 참가하였다.
한편, 북한은 1975년 5월 16일 미얀마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대사관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아웅산암살폭발사건 이후 미얀마 정부가 1983년 11월 북한 정부 승인을 취소하고 공관원의 철수를 요구함에 따라 1983년 11월 4일 양측의 관계는 단절되었다. 이후 2007년 4월 26일 국교가 재개되어 2007년 현재 상주 대사관이 설치되어 있다.
양측은 1977년 9월에 경제 및 기술협조에 관한 기본협정, 1978년 2월에 항공운수 협정을 체결하였으나 1983년 미얀마의 대북한 단교 이후 모두 폐기되었고, 2007년 4월에 복교합의서를 교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