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Nepal)

네팔의 국기
네팔의 국기
외교
지명/국가
아시아 서부 내륙에 있는 공화국.
이칭
이칭
네팔연방민주공화국, 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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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아시아 서부 내륙에 있는 공화국.
개관

2008년 7월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네팔(Nepal)은 히말라야산맥 중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 면적은 14만 7181㎢, 인구는 3155만 1305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카투만두(Kathmandu)이다.

종족은 아리안족이 80%, 티베트 몽고족이 17%이며, 언어는 네팔어가 공용어이다. 종교는 힌두교가 80.6%, 불교가 10.7%, 기타 4.2% 등이다.

인구의 95%가 농촌에 살고, 노동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한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96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763달러이다.

네팔은 의원내각제의 공화국으로서, 의회는 단원제(601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네팔공산당(CPN-M), 네팔국민회의당(NC), 공산당연합(CPN-UML) 등이 있다.

약사

네팔은 9세기∼14세기까지 인도의 지배를 받았으며, 1769년 구르카(Gurka) 왕조가 카트만두 계곡을 정복하고 통일왕국을 건설하였다.

1814년 영국에 지배당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해 왔다. 1846년 이후 100년 동안은 영국의 지원을 받은 라나가(家)의 독재정치가 실시되었으며, 1951년 2월 18일 왕정이 복고되면서 입헌군주제가 확립되고 독립을 이루었다.

의회는 1960년 12월 국왕에 의하여 해산되었고 촌락의 장로가 중심이 되는 국가 판차야트(Rastriya Panchayat)가 1962년 입법기관으로 설치되었으며 정당은 배제되었다. 1967년 제1차 헌법개정이 이뤄지고, 1972년 1월 현재의 비렌드라 국왕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1979년 각 단계의 가이드라인 아래에서만 활동을 허락하는 판차야트 제도는 국가적인 저항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1980년 판차야트 정치체제 존속과 정당정치 부활 중 양자택일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투표자의 54.8%가 판차야트 존속을 지지함에 따라 제3차 헌법개정이 이뤄졌다.

이후 계속적인 무장 테러에도 불구하고 1986년 4월 선거 결과 국왕에 대한 지지도가 1981년보다 더 높아지자 정치집단들은 지하활동을 시작하여 결국 ‘네팔연합 마르크스 좌익주의자’라는 공산당의 형태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국내의 반대와 시위대에 대한 네팔 당국의 과잉 진압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켜 비렌드라 국왕은 1990년 4월 6일 범민주주의 운동에 굴복하여 헌법개정위원회 발족 동의, 복수정당제 부활 약속 등 핀차야트 제도는 결국 여러 분야의 압력으로 붕괴되었다.

1990년 11월 9일 비렌드라 국왕은 주권재민, 서구형 입헌군주제, 기본적인 인권 보장, 다당제 민주주의를 공포하였다. 1991년 5월 2일 정당 참가에 의한 32년 만의 총선거에서 네팔의회당(NC)이 과반수 이상을 획득하였으며, 네팔공산당(CPN-UML)이 두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여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1야당이 되었다.

NC의 사무총장 코이랄라가 수상으로 임명되었으며, 선거 후 60명의 의회 의원은 새 헌법에 따라 국왕이 임명한 10명과 함께 하원을 구성하였다. 아울러 지방선거를 실시하여 민주주의 안정화를 꾀하였으며, 인도를 비롯한 이웃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하였다.

1994년 7월 의회에서 NC 내 반(反) 카이라라파 의원 불참으로 차기 회계연도 정부사업 계획이 부결되자 코이랄라 수상은 의회 해산 및 수상직 사임을 국왕에게 건의하였고 국왕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 실시가 결정되었다.

총선 결과 제1야당이던 네팔공산당이 전체 하원의석 205석 중에서 88석을 차지하여 네팔의회당, 국민당(RPP)을 누르고 승리하여 아디카리 수상의 네팔공산당 소수 단독정부가 출범하였다.

그러나 네팔의회당측은 공산당 정부에 대한 지지 철회 및 국민당과의 연정 구성을 모색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아디카리 수상은 1995년 6월 9일 비렌드라 국왕에게 국회해산을 건의, 국왕은 국회 해산(6월 13일) 및 조기 총선(11월 23일) 실시를 결정하였다. 선거 결과 국민당의 타파(Surya Bahadur Thapa) 수상의 연립정부가 출범되었다.

한편, 2001년 6월에는 네팔의 왕세자가 국왕 등 왕족 8명을 총으로 사살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에도 네팔에는 민주화 요구 시위와 총파업이 계속되었고, 뒤 이어 즉위한 갸넨트라 국왕은 이에 굴복하여 2002년에 해산된 의회를 복원한다고 발표하였다. 2006년 11월에는 네팔 정부가 반란진영 마오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11년간의 내전이 공식 종료되었다.

마침내 2008년 7월 21일 네팔은 왕국에서 대통령이 통치하는 공화국으로 바뀌었고, 국민에 의한 선거를 통하여 람 바란 야다브(Ram Baran Yadav)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며, 실권자 기리자 프라시드 코이랄라(Girija Prasad Koirala) 총리가 내각을 이끌었다.

네팔은 전통적인 중도중립의 비동맹국가로서 1955년 유엔에, 1961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와 네팔은 1969년 7월에 영사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72년 6월 주카트만두 총영사관이 개설되었다. 1974년 5월 15일 공식 외교관계가 수립되었고 총영사관이 대사관으로 승격하였다.

양국은 1971년 5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88년 2월 항공 협정, 1997년 9월 EDCF기본 협정, 2001년 10월 이중과세방지 협정을 체결하고, 2004년과 2005년에 문화 협정을 체결하였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네팔 수출액은 2003만 달러로 주종목은 전기전자제품과 철강이며, 수입액은 288만 달러로 농산물과 섬유류가 주종목이다. 삼부토건 등 건설회사가 현재 진출해 있으며, 353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1974년 5월 15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78년 12월에는 경제협정을 체결하였다. 이후 1997년 2월에는 문화교류 계획서, 2001년 10월에는 외교부간 협의체 구성약정을 체결하고, 2006년 4월에는 정보통신분야 협력증진을 위한 정보기술 협정을 갱신하였다.

참고문헌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네팔』(산업연구원 편, 동남아국별편람, 1986)
『동남아정치론』(이우진, 법문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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