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충청도암행어사, 대사간, 이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이듬해에 임금을 위한 시독관이 되었으며, 1762년는 홍주어사(洪州御史)가 되었다. 이어 통신사의 종사관에 임명되어 호조로부터 은 3,000냥을 빌려 역관이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으나, 정사가 바뀌는 바람에 종사관도 정상순(鄭尙淳)으로 교체되었다.
이듬해 부교리·헌납·수찬·충청도암행어사가 되었다. 1764년 사학(四學)의 유생 안구(安榘) 등이 송시열(宋時烈)을 효종 묘정에 추배하라고 상소한 일이 있었는데, 이 때 승지로서 봉소를 했다 하여 파직당했다. 이듬해에 다시 대사간이 되었다.
1770년(영조 46)에 이조참의, 이듬해에 대사성이 되었다가 다시 대사간이 되었는데, 양근(楊根)에 있으면서 대간에 제배된 뒤 곧 올라오지 않았다고 하여 그 지역에 정배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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