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경주부윤,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537년에 장령으로 사헌부의 여러 관원과 더불어 외척 윤원로(尹元老)·윤원형(尹元衡)과 김안로(金安老)를 죄줄 것을 청하였다. 시독관이 되어 당시 첨사(僉使)·만호(萬戶) 등이 백성들에게 침탈한 재물을 조정의 김안로에게 뇌물로 바친다 하고 염치를 숭상하는 풍습을 받들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1538년에는 언관으로서 현량과(賢良科)의 복구를 주장하다가 외방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나주목사(羅州牧使)가 되어 위엄을 부리지 않고 일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며, 백성들의 부세와 요역을 간략히 하여 몇 달 사이에 교화가 널리 베풀어져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한다.
1559년(명종 14)에 대사간이 되어 열 조목의 나라 다스리는 도리를 상소했는데, 기강을 세우고 학교를 높이고 하늘의 경계에 조심할 것, 언로를 열 것, 사기 양성, 내시 억제, 상벌을 분명히 할 것, 수령 선택, 어진이를 등용할 것, 염치를 북돋울 것 등이었다. 사람됨이 간소하여 번잡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직무를 이행함에 청렴·근면하여 훌륭하다는 평판과 함께 청백리에 뽑히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중종실록(中宗實錄)』
- 『명종실록(明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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