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필

  • 역사
  • 인물
  •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경주부윤,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은경(殷卿)
인물/전통 인물
  • 본관전주(全州)
  • 사망 연도1562년(명종 17)
  • 성별남성
  • 주요 관직병조참지|형조참판|경주부윤
  • 출생 연도1507년(중종 2)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전기에, 형조참판, 경주부윤,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은경(殷卿). 종실 백피도정(白陂都正) 이상(李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옥계도정(玉溪都正) 이현동(李賢童)이다. 아버지는 이맹원(李孟元)이며, 어머니는 윤종손(尹宗孫)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1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형조좌랑·지평·장령·헌납·교리·사간·예조참의·병조참의·병조참지·형조참판·경주부윤·대사간·호조참판 등 청현직(淸顯職)을 두루 역임하였다. 1534년(중종 29) 헌납으로 있으면서, 무과초시(武科初試)에서 강서(講書)할 때 시관이 빨리 합격자를 발표하고자 과거보는 사람 중에 점수가 적은 사람에게는 들어와 강서하는 것을 허락치 않았는데, 과거를 이처럼 거칠게 할 수 없다며 그 부당함을 지적하였다.

1537년에 장령으로 사헌부의 여러 관원과 더불어 외척 윤원로(尹元老)·윤원형(尹元衡)과 김안로(金安老)를 죄줄 것을 청하였다. 시독관이 되어 당시 첨사(僉使)·만호(萬戶) 등이 백성들에게 침탈한 재물을 조정의 김안로에게 뇌물로 바친다 하고 염치를 숭상하는 풍습을 받들어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1538년에는 언관으로서 현량과(賢良科)의 복구를 주장하다가 외방으로 좌천되기도 하였다. 나주목사(羅州牧使)가 되어 위엄을 부리지 않고 일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며, 백성들의 부세와 요역을 간략히 하여 몇 달 사이에 교화가 널리 베풀어져 사람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한다.

1559년(명종 14)에 대사간이 되어 열 조목의 나라 다스리는 도리를 상소했는데, 기강을 세우고 학교를 높이고 하늘의 경계에 조심할 것, 언로를 열 것, 사기 양성, 내시 억제, 상벌을 분명히 할 것, 수령 선택, 어진이를 등용할 것, 염치를 북돋울 것 등이었다. 사람됨이 간소하여 번잡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직무를 이행함에 청렴·근면하여 훌륭하다는 평판과 함께 청백리에 뽑히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 『중종실록(中宗實錄)』

  • - 『명종실록(明宗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콘텐츠 이용 안내

콘텐츠 수정 요청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주제
0 / 500자
근거 자료
첨부된 파일이 없습니다
파일선택

최대 5개, 전체 용량 30Mb 첨부 가능

작성 완료되었습니다.

작성글 확인

다운로드가 완료되었습니다.

다운로드할 미디어를 선택해주세요.

모든 필수 항목을 입력해주세요.

다운로드할 미디어가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다운로드 중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미디어 다운로드

  • 이용 목적을 상세히 작성하여 주세요.
    서비스 개선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표기 : [사진명]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필수 입력 항목입니다.

이용목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