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자눌(子訥). 아버지는 함녕군(諴寧君) 이인(李䄄)이다.
1442년(세종 24) 처음 통정대부로서 원윤(元尹)이 되고, 1444년(세종 26) 명선대부로 곤의정(坤義正)에 올랐다.
3년 뒤 종2품 정의대부의 품계를 받고 덕성군에 봉하여졌으며, 1470년(성종 1) 관례에 따라 승헌대부에 올랐다. 그러나 이때부터 병이 있어 늘 약으로 지탱하다가 1473년(성종 4)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품이 단아, 인자하였으며 경사(經史)를 두루 섭렵하여, 일찍이 세조가 강목(綱目)에 대하여 물었을 때 답변하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 아들이 없어 옥산군 이제(玉山君 李躋)의 아들 이순(李揗)으로 뒤를 잇게 하였다. 시호는 이도(夷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