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천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한성판윤, 의정부좌참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본관용인(龍仁)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한성판윤|의정부좌참찬|지중추부사
  • 출생 연도1737년(영조 13)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장필기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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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한성판윤, 의정부좌참찬, 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용인(龍仁). 이교악(李喬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세준(李世準)이다. 아버지는 이의로(李宜老)이며, 어머니는 조화벽(趙和壁)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71년(영조 4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보온(李普溫)·홍상성(洪相聖)·이규위(李奎緯)·안성빈(安聖彬)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권점(圈點)되었다.

1775년(영조 51)에 정조가 세손으로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게 되었을 때, 예를 행하던 날 숙배(肅拜)에 참여하지 못하여 향리로 방축(放逐)되었다. 이 때 지평 홍낙항(洪樂恒)이 이를 김상익(金相翊)·송형중(宋瑩中)·박종집(朴宗集) 등과 연관시켜, 김상익의 지시에 의하여 고의로 그런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이보천은 단양(丹陽)에 휴가를 받아 내려갔다가 급히 상경하였다고 상소하였다.

또한 1801년(순조 1)에는 전라감사 윤행임(尹行恁)이 문형(文衡: 문사에 관한 관직으로 대제학을 이름.)과 전병(銓柄: 전랑의 선발권이나 추천권)을 오로지 차지하고 있을 때 공의(公議)를 저버리고 사사로움을 좇아 가까운 친·인척을 천거하였다고 탄핵되었는데, 이보천 또한 여기에 관계되어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검열·좌부승지·대사간·형조판서·한성판윤·의정부좌참찬·지중추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 『영조실록(英祖實錄)』

  • - 『정조실록(正祖實錄)』

  • - 『순조실록(純祖實錄)』

  • -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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