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좌랑, 병조정량, 서장관, 강원·경상조도사의 종사관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0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형조좌랑 ·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때 『선조실록』 편찬에 편수관으로 참여하였고, 1610년(광해군 2)에 서장관(書狀官)으로 동지사 정경세(鄭經世)를 따라 염초(焰硝: 박초로 만든 약재)를 사오는 데 공헌하였다 하여 승급되었다.
1617년(광해군 9) 강원 · 경상조도사(江原慶尙調度使)의 종사관(從事官)이 되어 ‘백성들을 모집하고 곡식을 납부할 때 노직첩(老職帖)과 추증당상직첩(追贈堂上職帖) 및 추증당상가선실직첩(追贈堂上嘉善實職帖)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많은데, 공명첩(空名帖)을 더 많이 만들어 곡식 얻을 길을 넓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폐비문제에 대하여서는, ‘변란에 대처하는 문제를 적절하게 하는 것이 묘당에 달려 있다’하여 일의 순리를 좇았다. 사과(司果) 등을 역임하였다.
참고문헌
- 『선조실록(宣祖實錄)』
-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 『연려실기술(燃黎室記述)』
- 『국조방목(國朝榜目)』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