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황해감사, 평안감사, 함경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682년(숙종 8) 수원부사로 있으면서 스승인 송준길이 관작을 추탈당하자, 그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 하여 신변(伸辯)의 소(疏)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방을 받았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송시열(宋時烈)·김익훈(金益勳)의 당으로 지목되어 창성(昌城)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698년 승지로 있을 당시 유망(流亡)하는 백성들의 안집책을 건의하기도 하였으며, 1701년에는 마천령(摩天嶺)·철령(鐵嶺)·성진(成津) 등을 요새화하여 북방수비에도 힘쓸 것을 주장하였다.
1702년(숙종 28) 강화유수로서 강화 토성(土城)의 개수(改修) 문제를 건의하여 갑곶진(甲串津)의 석성(石城)을 보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 알성시(謁聖試)의 시관이 되어, 사위인 김만근(金萬謹) 등이 급제된 일로 지방 유생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숙종실록(肅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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