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사길(士吉). 이동명(李東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강(李康)이다. 아버지는 이수담(李壽聃)이며, 어머니는 최수석(崔壽石)의 딸이다.
1736년(영조 12) 정시문과(庭試文科)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지평·정언·장령·태안군수(泰安郡守)·집의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744년(영조 20)에 지평 박성원(朴聖源)의 계청(啓請)을 논의할 때에 입시하지 아니한 관원들을 파직시키고, 또 당시의 인사 행정이 대단히 편파적이어서 국자감(國子監)이 새로 3망(三望: 세 후보자를 추천함.)을 허통시켜 등용하는 것 등이 조제보합(調劑保合: 아무런 문제나 큰 변동없이 조정함.)하고자 하는 국왕의 뜻을 어그러친 것이라 하여 이에 대한 견책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영조는 도리어 당파에 부정적인 일이라고 하였다.
또 종성부사(鍾城府使)로 있던 1756년(영조 32)에 청나라 사신이 조선 군인들의 위용을 보려고 하자 친기위(親騎衛)를 출동시켜 청차(淸差)로 하여금 시사(試射)하여 상을 주게 하였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탄핵을 받고 충군의 역에 처하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