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달보(達父). 종실 영천군(靈川君) 이정(李侹)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여원정(礪元正) 이세헌(李世憲)이다. 아버지는 이창(李昌)이며 어머니는 이빈(李斌)의 딸이다.
1680년(숙종 6)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94년(숙종 20)에 하지사(賀至使) 홍만용(洪萬容)을 좇아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갔다 와서 이내 경상좌도(慶尙左道)의 암행어사가 되었다.
그 뒤 장령·지평을 거쳐 집의가 되어서는, 기사년(己巳年: 1689, 숙종15)에 있었던 의리(義理) 논쟁에 대한 일로 김진규(金鎭圭)·김진구(金鎭龜)·김진구의 아들 김춘택(金春澤)을 배척하였는데, 이 일로 노·소론(老少論) 간의 치열한 공방전과 함께 사직되었다.
그 뒤 여러번 수망(首望: 제1의 후보자)으로 주의(注擬: 후보자를 추천하는 일)되나 낙점되지 못하다가 박천군수(博川郡守)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 때 사조(辭朝: 새로 부임하는 관원이 부임하기 전에 왕에게 하직인사를 드리는 일)하지 않고 사사로이 부임하여 인신(印信: 옥새)을 받았다 하여 양주(楊州) 녹양역(綠楊驛)에 2년 반의 정배형(定配刑)을 받았다. 필선·헌납·보덕·사간·승지 등의 청직(淸職)을 두루 거쳤으며, 전라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