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벽진(碧珍). 자는 여길(汝吉), 호는 덕암(德巖). 영산현(靈山縣) 온정리(溫井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증가선대부 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贈嘉善大夫戶曺參判兼同知義禁府事) 이엄(李儼)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 승의부위(承義副尉) 박광미(朴光美)의 딸이다.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아 한 번도 응시하지 않았다. 1580년(선조 13)에 정구(鄭逑)가 창녕(昌寧)군수로 부임, 이석경을 방문하여 수일간 강론하여 보고서 ‘좌우에게 근후(謹厚)한 사람으로 재식(才識)이 매우 뛰어나 벼슬을 하게 되면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벼슬을 싫어 하니 애석하다’고 하였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이석경은 자제(子弟)를 이끌고 곽재우(郭再祐)의 진(陣)에 나아가 곽재우를 도우고 있던 중 부친의 병모를 듣고 귀가하였다. 1600년(선조 33)에 효행(孝行)으로써 사과(司果)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그 뒤에 다시 부사과(副司果)에 임명되었다.
1627년(인조 5) 이석경의 아우 이후경(李厚慶)이 음성현감(陰城縣監)으로 재직할 때 편지로써 선조(先祖)의 청백(淸白)의 훈계를 잊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통정대부공조참의(通政大夫工曺參議)에 추증되었으며 영산(靈山) 덕봉서원(德峯書院)에 봉향되었다. 저서로는 『덕암문집(德巖文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