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주(驪周). 자는 광보(光甫). 이훤(李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동암(李東馣)이다. 아버지는 이노(李𢋡)이며, 어머니는 유두수(柳斗壽)의 딸이다.
1746년(영조 22) 정시문과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1747년(영조 23)에 정언이 되어 전지(銓地)의 폐단에 대해, 십수 년 동안 고심하고 정성을 쏟은 것이 간혹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 끝에 가서는 게을러지는 염려가 있다고 하여 이를 경계, 조절해야 한다고 상소했다.
1750년(영조 26)에 장령이 되어서는 장릉참봉(章陵參奉) 홍천보(洪天普)·충청병사(忠淸兵使) 원필규(元弼揆)의 태거(汰去: 죄과가 있는 관리를 파면함.)와 헌관(獻官: 국가의 의식이 있을 때 임시로 임명하는 祭官)으로서 수향례(受香禮: 국가의 의식 때 제사를 치르는 예)에 나오지 아니한 훈련정(訓鍊正) 이재형(李再馨)을 죄줄 것을 청하였다. 그 뒤 집의·헌납·사간 등의 청직(淸職)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