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득보(得甫). 이홍원(李弘元)의 5세손이며, 이정(李楨)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이준길(李浚吉)이고, 아버지는 이경필(李景弼)이며, 어머니는 엄집(嚴䌖)의 딸이다.
1731년(영조 7)에 성균관 유생(儒生)에게 보인 강(講)에 합격하고, 1733년(영조 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44년에 지평을 거쳐 정언이 되었다. 1752년(영조 28)에 왕의 부름을 어겼다 하여 경상도에 유배되었다가 방면되어 헌납·장령 등을 역임하고, 정의현감·순천부사를 역임하였다.
1757년 장령으로 재임시 영남에서 귀양살이 하면서 주사군(舟師軍)의 요포(料布: 급료로 주던 무명이나 베)가 고르지 않아 그 폐단이 많음을 보고 규례에 준하여 지급할 것을 주장하고, 1758년에 사간이 되어서는 거려청(居廬廳)의 관은(官銀) 문제로 의견을 제시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기도 하였다.
이에 정휘량(鄭翬良)·엄인(嚴璘) 등이 대신(臺臣)의 언로를 막아서는 않된다고 진언하기도 하였다. 1762년에 승지로 있을 당시 병조낭관(兵曺郎官) 남용현(南龍見)과 칙사의 수행인 문제로 서로 다투다가 관직을 박탈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