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후기에, 교정당상, 동지사 등을 역임한 종실.
생애 및 활동사항
같은 해 동지 겸 사은사로 부사 이광덕(李匡德)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는데, 이 때 왕이 『명사(明史)』 전질을 구해올 것을 명하였으나, 공무로 갔기 때문에 사무(私貿)의 이행을 할 수 없음을 이유로 실행하지 못하였다.
그 뒤 1743년에 동지사로 임명된 장계군(長溪君)이 병으로 갈 수 없게 되자 이를 대신하여 다녀왔다. 1748년에는 『국조어첩(國朝御牒)』의 교정당상(校正堂上)이 되어 이의 개정에 참여하였다. 1751년에는 동지사로 부사 신사건(申思健), 서장관 심발(沈撥) 등과 세번째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753년 종실이 궁핍하게 되어 강교(江郊)에 거주하는 자들이 그 가난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을 알리고 긍휼책을 강구해줄 것을 건의하여 이를 시행하게 하였으며, 같은 해 영의정 이천보(李天輔)의 상소에 따라 선조(先朝)의 종신(宗臣)으로서 가자되었다.
참고문헌
- 『영조실록(英祖實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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