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용인(龍仁). 자는 여순(汝詢). 호는 죽유(竹牖). 아버지는 개성유수 이후산(李後山)이며, 어머니는 풍산김씨(豊山金氏)로 판서 김수현(金壽賢)의 딸이다. 윤문거(尹文擧)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윤선거(尹宣擧)·유계(兪棨) 등과 교유하였다.
1663년(현종 4) 사마시에 합격한 뒤, 이듬 해 정릉참봉(靖陵參奉)에 임명되었으며, 1673년 빙고별검(氷庫別檢)이 되었으나 파직당하였다가 1678년(숙종 4) 복직되고, 이어 동몽교관(童蒙敎官)이 되었다.
1680년 의금부도사·형조좌랑·인제현감을 거쳐 1687년 한성부판관, 1689년 금산군수, 1691년 익위사익찬(翊衛司翊贊)·한성판관·호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692년 사옹원첨정을 역임하였으며, 1694년 익위사사어(翊衛司司禦)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한거하면서 독서생활을 하였다.
소론쪽 인사들과 교유하였으며, 1694년 은퇴한 것도 갑술환국으로 인한 소론의 퇴진 때문인듯하다. 글씨를 잘 써서 대사간 이사경(李士慶)의 묘갈 등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