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사중(士中). 종실 봉래군 이형신(李炯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야(李壄)이다. 아버지는 이기창(李箕昌)이며 어머니는 홍호(洪灝)의 딸이다. 이시정(李蓍廷)의 형이다.
영평현령(永平縣令)으로서 1754년(영조 30)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이어 1766년 중시문과에 급제하였다. 1759년에 북평사(北評事)로서 시역(試役)을 겸하였는데, 시역을 마치고서도 본직으로 부임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종성부(鍾城府) 충군역(充軍役)으로 정배되었다.
그 뒤 정언·장령을 거쳐 1762년에 헌납으로서 나경언(羅景彦)에게 노적(奴籍)의 법률(法律)을 시행하도록 주청하였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기도 하였으며, 집의·사간을 거쳐 1766년에 좌부승지(左副承旨), 이듬해에 대사간을 역임하였다. 이 때 국왕에게, 조정에 널리 자문을 구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해 줄 방안을 논의하도록 청하였다.